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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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데기에는 없고 김어준은 있는 것

작성일 : 2025.06.06 20:01

작성자 : 편집부 (sisa041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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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 돌아온 듯하다. 아니 돌아왔다는 확신이 들어서인지 투표 결과를 받아 든 6월 4일은 마치 전두환이 총·칼과 탱크를 동원해 전국 대학을 강제 휴교시키고, 광주 시민을 학살한 괴물이 뇌리에서 완전히 지워진 날 느꼈던 기분과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21세기 난데없는 계엄령을 선포한 윤석열이라는 괴물을 탄생시키는데 가장 큰 공헌을 한 무리는 ‘언론’이다.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내일도 변함없이 권력에는 비굴하고, 약자에게는 강자의 논리를 설파(?)하는 역할에 충실할 것도 예측 가능하다. 

일본은 3·1운동(1919) 이후 문화정치라는 핑계로 ㅈ일보와 ㄷ일보를 허가(1920)했지만 정도만 다를 뿐 일본의 식민지 논리를 한국인에게 전달하는 데에는 큰 차이가 없었다. 그들이 일본에 충성했던 기록은 각종 자료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그러면 이 시절의 기자와 지금의 기자는 다른 존재인가 생각해보면 권력(權力)이라는 위치가 일본에서 윤석열로 옮겨간 것일 뿐, R&D 예산에 대해 항의하는 학생이 회의장에서 끌려 나가고 입틀막이 되도, 만화축제에서 고등학생의 패러디 작품이 금상을 받고도 검열의 대상이 되도, 시사프로그램에서 김○○‘여사’ 호칭을 생략했다는 이유로 제재를 받아도, MBC 방송이 대통령기 탑승을 거부당했을 때도 그들 대부분 침묵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윤석열이 초청한 바비큐 파티에 참석해서 김치찌개를 먹으며 기념사진을 찍는 등 자신들의 이익이 되는 일에는 서슴없었다. 참석한 누구도 채해병 사고사에 관한 특검법이나 김건희 특검법에 대한 질문은 한 마디도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대신 계란말이와 고기 더 주세요!라는 외침만이 난무했다고 하니 그들을 제대로 된 기자로 보는 국민은 있기나 했었을까 싶다. 당장 김건희“씨”는 말도 못 꺼냈던 기자가 이재명대통령 영부인인 김혜경여사에게는 “씨”로 호칭하자며 떠들어대고 있는 꼴이 가관이다.

언제부터 기자(記者:신문, 잡지, 방송 등의 기사를 쓰거나 편집하는 사람)가 기레기(기자+쓰레기) 혹은 기데기(기자+구데기)라는 표현이 일반화 되었을까? ‘기레기’라는 말을 “기자의 역할은 제대로 못하면서, 선정적인 기사나 왜곡된 보도를 일삼는 기자”를 비난할 때 주로 사용한다. 기자는 기본적으로 진실을 알리고, 공정성과 객관성을 유지해야 한다. 그 때문에 사회는 기자의 취재에 대해 광범위하게 자유성을 보장하고 있음이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설득을 위한 3대 요소로 ‘로고스-파토스-에토스’를 들었다. 로고스(logos)는 ‘상대에게 명확한 증거를 제공하기 위한 논리’, 파토스(pathos)는, ‘듣는 사람의 심리상태’, 에토스(ethos)는, ‘화자에 대한 신뢰성’이다. 이 시대의 기레기에는 독자를 설득할 수 있는 3대 요소의 어느 것도 찾아볼 수 없다. 자신들의 취재와 보도에 대한 광범위한 자유는 만끽하길 원하면서, 책임과 의무에 대해서는 나몰라라 하는 존재라는 것이 이 시대의 평가다. 

이런 평가는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기에 더욱 안타깝다. 클릭 수를 한 번이라도 더 늘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다 보니 근거 불명, 카더라, 선정적 기사를 아무런 거리낌 없이 토해내는 구더기 신세를 자초했고, 그저 클릭 수에 따른 보상에 목을 매는 쓰레기 기사 생산직으로 스스로 전락한 것이다. 그래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신문은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 

경제적으로는 약 30년 전인 1996년 29번째로 OECD 회원국이 되었다.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1만3,351달러에서 3만6,745달러로 약 3배로 증가했고, 2023년부터 일본을 앞서고 있다. 인구 5천만 명 이상인 국가를 대상으로하면 미국・독일・영국・프랑스・이탈리아에 이은 여섯 번째 국가가 되었다. 그런데도 한국인의 언론 신뢰도는 31%(2024,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부설 로이터 저널리즘 연구소)다. 47개 국가에서 38위를 기록했고, 아시아・태평양 11개 국가 중에서는 꼴찌다. 검찰이 흘리는 내용에 대해 ‘언론의 책임과 엄중함’을 망각하고 쏟아낸 선정적인 보도는 고(故) 이선균 배우를 죽음으로 몰았지만, 지금까지 누구도 자성의 목소리는 내지 않았다. 세월호 사건도 이태원 참사도 그들은 그저 정부가 불러주는 꼭두각시 노릇에 충실했다. ‘왜? 무서우니까.’ 
 
진보정권이 탄생하면 기레기 및 기데기들은 물 만난 고기떼처럼, 시체를 발견한 하이에나처럼 짖어댄다. 왜? 그들은 보복한 적이 없으니까. “호의가 반복되면 권리로 인식”하는 것처럼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언론자유를 목 놓아 외친다. 그러다 보수정권이 탄생하면 “여사”라는 호칭을 붙이지 않았다고 선거방송심의위원회에서 SBS에 행정지도를 내려보내도 눈을 감고, 입을 닫는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이명박, 박근혜, 윤석열로 이어지는 보수정권 하의 언론과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으로 이어진 진보정권 하의 언론의 보도 행태를 보면 일목요연(一目瞭然)하다. 노무현 대통령을 죽음으로 내몬 ‘논두렁시계’에 대한 선정적인 추측 보도를 생각하면, 김건희 씨가 받아서 분실했다는 샤넬 백도 똑같이 다뤄야 했지만, 윤석열이 탄핵되기 전까지는 언론은 입을 다물었다. 얼마나 용감한가. ‘약자에게는 하이에나처럼, 강자에게는 푸들처럼’ 대하는 것이 이 시대 기자라는 직장인이다.

한국의 언론사 수는 총 6,836개(2021)로 보고된다. 전체 종사자 수는 6만여 명, 그 중 기자직을 가지고 있는 자가 3만3,971명이다. 약 3만4,000명의 기자가 하루에 한 개의 기사를 작성한다고 해도 기사가 넘쳐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발로, 기자의 양심을 걸고 취재하는 보도보다는 누군가 던져주는 보도자료에 적당히 첨삭하고, 선정적인 타이틀을 달아 기사로 날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기사의 품질보다 클릭수를 높이는 것이 돈이 되는 구조에 익숙해진 그들을 기자로 부를 수 있을지 아니면 기자라는 직장인으로 봐야 할지는 독자의 평가 영역이다. 

매일 물밀듯이 쏟아지는 대량 정보 유통 시대에 뉴스는 단순한 정보전달 영역으로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뉴스에 대한 해석 능력을 요구받고 있다. 즉, 뉴스에 대한 중요도를 해석하고, 뉴스가 가지고 있는 행간에 대해 ‘적극적 추론’의 영역에 발을 담그는 용기가 필요하다. 물론 “적극적 추론”에 대한 위험은 기자 본인이 감당하고자 하는 언론자유에 대한 책임을 감당할 용기가 수반(隨伴)되어야 한다. ‘기자는 기사로 말한다’라는 것은, “기자가(주어) 기사를 통해 제 생각이나 주장을 표현하고, 독자들에게 객관적인 정보를 전달하여, 사회적 이슈에 대한 논의를 촉발한다.”라는 의미다. 즉, 정보전달・사건해석(적극적 추론+위험)・의견 표명(기자의)・사회적 논의 촉발・검증이라는 프로세스를 양심과 책임을 지고 살펴야 한다.

‘김어준은 있고, 기레기는 없는 것’은, “위험을 전제로 뉴스에 대해 적극적 추론”함을 멈추지 않는 용기다. 그런 용기가 한국의 가장 신뢰하는 언론인 중의 한 사람으로 인정받는 이유다.


 

안용주

전 선문대학교 국제레저관광학과 교수
전 대전관광공사 상임이사
현 (사)한국지역혁신네트워크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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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의 : 박창규 기자 010-8713-5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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