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을 ‘사회적 동물’이라고 표현했다. 사회적 동물이란 개인의 존재가치뿐만 아니라 끊임없이 타인과의 관계를 형성하는 존재라는 말이다. 타인과의 관계를 형성하는데 빠질 수 없는 것이 ‘인사’라는 행위다. 인사를 나누는 방법은 국가별로 다르지만, 인사하는 이유는 차이가 없다. 상대를 존중하고 있음을 표현함으로써 자신 또한 존중받기를 원하는 상호(相互)관계의 출발점인 셈이다. 동양(東洋) 특히 한국 사회에서는 여기에 한 가지를 덧붙여야 하는데 인사가 사회적인 위계 서열을 나타내는 지표 역할도 포함하고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언어(言語)는 문화(文化)의 총아(寵兒)다. 한 집단의 문화(文化)적 요소를 자양분(滋養分)으로 탄생한 것이 ‘언어’이기 때문에 훔볼트(Wilhelm Von Humbolt)는 “한 나라의 언어는 그 나라의 문화와 정신이 깃들어 있다”고 지적했다. 역설적으로는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한 나라의 문화적 핵심 코어를 이해하는 행위가 된다. 전 세계의 3/4이 사용하고 있는 영어에는 존경어나 존대어(尊待語)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물론 정중한 표현은 존재한다. 즉, 자기 아버지를 향해 You(너, 당신)이라는 ‘말(language)’을 사용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한국에서 자기 아버지나 타인의 아버지를 향해 ‘너’라고 부른다면 치도곤(治盜棍, 죄인의 볼기를 치던 곤장)을 맞을 일이다. 이는 설사 부모자식관계라 하더라도 객체로서의 주권을 인정하는 수평적 관계로 볼 수 있다.
일본어와 한국어에는 복잡한 경어체계가 존재한다. 같은 존재임에도 호칭은 각기 달라서 ‘아버지’, ‘아버님’, ‘가친’, ‘엄친’, ‘부친’, ‘춘부장(春府丈, 남의 아버지에 대한 높임말)’등 사회적 관계에 따라 부르는 호칭을 달리한다. 이는 호칭 속에 이미 ‘위계 서열’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일본어에도 이와 같은 복잡한 호칭이 존재하는데 그런데도 일본어가 좀 더 복잡한 경어체계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도 개인적으로는 일본어가 한국어에 비해 사회적 관계를 좀 더 수평적으로 바라보고 있다고 보인다. 그 차이는 ‘너’에 해당하는 “아나따(貴方)”라는 말을 자기 아버지를 향해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단편적인 언어를 통해 느낄 수 있는 작은 부분이지만, ‘인사’를 통해 사회적 위계서열을 판단하는 근거로 사용하는 것은 한국이 유일(唯一)한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새벽 5시가 되면 어김없이 배낭을 메고 하이킹에 나선다. 그러면서 시작한 실험이 있다. 산길을 걸으면서 만나는 사람에게 어김없이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를 건넨다. 반응은 여러 가지다. 대부분 못 들은 척 지나간다. 어쩌다 한 두 번 같은 인사를 건네는 사람을 만난다. 통계적으로는 무반응(無反應)이 98%쯤일듯하다. 그러다 보니 이쪽도 변화가 시작된다. 목소리가 점점 더 작아진다. 또한 시선을 두지 않게 된다. 그저 땅바닥을 바라보며 중얼거리듯 ‘안녕하세요’를 작게 내뱉듯이 건넬 뿐이다.
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이라는 말을 수없이 들었지만, 한국인 만큼 인사성 없는 나라는 보기 드물지 않을까? 어쩔 수 없이 공간을 공유해야 하는 엘리베이터나 사람이 많지 않은 주차장 같은 곳에서 스쳐 가는 사람에게, 한국인 대부분은 눈을 맞추거나 혹은 맞췄다고 해도 인사를 건네는 경우는 드물다. 무시(無視)한다. 왜일까?
외국인 유학생들과 함께한 커뮤니케이션 이해 수업에서 이 문제를 다룬 적이 있다. 결론적으로 한국인은 ‘먼저 인사하는 사람이 위계질서에서 아랫사람으로 판단 받는 것을 참을 수 없다’는 점이다. 마치 먼저 인사하는 것을 자신이 상대방보다 못난 것처럼 느껴지는 것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자존심의 발로(發露), 혹은 억울함 같은 느낌일까? 그러고 보니 새벽 산길에 인사를 건네면 ‘네~’하고 인사만 넙죽 받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있다. 당연히 받아 마땅한 인사인 것처럼.
일본 유학 시절 필자보다 손윗사람임에도 눈이 마주치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건넨다. 거리가 멀어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것 같은 거리에서도 최소한 ‘눈인사’를 건넨다. 큰 아이는 이런 사회환경 속에서 자라다 보니 한국에 와서도 만나는 사람마다 인사를 건네지만 돌아오는 무반응, 무 액션, 무표정에 어느덧 몸을 뱃던 이름다운 인사성이 말끔하게 사라져 버렸다. 먼저 인사를 건넨다고 아랫사람이라거나 상대보다 못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없겠지만, 왠지 먼저 인사 한마디 건네지 못 하는 말만 동방예의지국 한국이 되었다.
안용주
전 선문대학교 국제레저관광학과 교수
전 대전관광공사 상임이사
현 (사)한국지역혁신네트워크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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