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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용주 칼럼] 무능 VS 무뇌

작성일 : 2024.07.01 23:11 수정일 : 2024.07.01 23:13

작성자 : 편집부 (sisa041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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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잘 아는 ‘없을 무(無)’는 대부분 뒤에 오는 명사에 ‘없다’, ‘아니다’, ‘~하지 않다’라는 의미를 추가함으로써 대부분 부정적인 의미를 생성한다. 무능(無能)은 ‘능(能)히 할 수 있다’ 혹은 ‘재능이 있다’라는 의미에 무(無)를 추가함으로써 ‘재능이 없다’라는 의미로 빠르게 전락시킨다.

무뇌(無腦)라는 단어는 본시 사전에 등록되어 있지 않은 단어다. 뇌(腦)는 본시 의학에서 말하는 ‘뇌’라는 신체 부위 자체를 의미하는 말로 ‘골’, ‘머리’의 의미에서 영어인 brain이 가지고 있는 ‘지적인 사람’ 혹은 ‘지적 지도자’라는 의미가 이식(移植)되면서 ‘생각이 없는 사람’ 혹은 ‘지적 능력이 부족한 사람’으로 활용된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 오래 거주한 한 미국인이 모 방송에서 ‘한국에 와서 가장 놀란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뉴스를 보는데 ‘내일은 전국적으로 비가 올 것으로 예상된다’라는 말을 듣고 ‘멘붕’했다는 말에 갑자기 ‘멘붕(멘탈이 붕괴됨)’을 느꼈다. 전국적으로 비가 온다는 말이 왜? 이상했던 걸까? 뒤에 이어지는 말에 비로소 이해가 갔다.

이해를 돕기 위해 미국 면적은 약 980만㎢, 남한은 약 10만㎢로 남한의 약 98배에 해당하는 면적이니, 여기에 전국적으로 비가 올 것으로 예상된다면 모두 노아의 방주를 만들던지 국가적으로 피난 대책을 세워야 할 만큼 중차대한 일이다. 모두 죽음을 각오해야 한다는 뉴스와 마찬가지인 사건을 아나운서는 태연하게 ‘내일 전국적으로 비가 올 것으로 예상된다’라는 한마디로 끝내버리니 멘붕이 아닐 수 없다.

인간관계에서 매우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첫인상(first impression)’이다. 혹자는 0.3초 만에 호감과 비호감을 판단하고, 3초면 한 사람의 첫인상이 결정된다고 하니 사회생활에서 이보다 중요한 일은 없어 보인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초두효과(primacy effect)로 설명하는데, ‘처음 제시된 정보 또는 인상이 나중에 제시된 정보보다 기억에 더 큰 영향을 끼치는 현상’으로 설명한다. 이는 인간의 뇌(腦)가 생리적으로 모든 정보를 일관성 있게 받아들이고자 하는 본능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나중 정보가 처음 정보와 반대되는 정보라 할지라도 나중 정보를 억지로 무시하고자 하는 뇌(腦)의 본능에 충실하게 따르기 때문이다.

앨버트 메라비언(Albert Mehrabian)은 저서 Silent Messages에서 한 사람의 정보를 수용함에 있어 시각(몸짓) 55%, 청각(음색, 목소리, 억양 등) 38%, 언어(내용) 7%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그는 대화하는 사람들을 관찰하면서 상대방에 대한 호감을 느끼는 순간을 포착해서 분석한 결과다. 즉, 결정적 요인은 상대방의 말의 내용이 아니라 이미지였던 것이다.

지난 대통령선거를 앞둔 후보자 토론을 통해 우리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이런 메라비언의 법칙(The Law of Mehrabian)에 우롱당한 것은 아닐까? 그런 어리석음에 대한 대가를 우리는 지금 철저하게 치르는 중이다.

태어나면서부터 한 사람의 대통령밖에 만나보지 못했던 사람들은 대통령이 아직도 나라의 아버지라는 개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절대 왕정(王政) 시절, 절대 군부(軍部) 시절의 기억을 소멸시킬 수도, 수정할 의지조차 없어 보인다. “나는 무조건 ○○만 찍어!”라고 외치던 어느 시장 아주머니의 인터뷰가 오버랩되는 순간이다.

주마간산(走馬看山)이라는 말이 있다. ‘달리는 말 등에서 산을 바라본다’라는 뜻이다. 떨어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면서 바라본 산이 얼마나 상세하게 기억에 남겠는가. 하지만 뇌(腦)에서는 산(山)을 보았다고 기억할 것이다.

서울에서 부산을 간다고 시간대(시차)가 달라지지는 않는다. 미국에서는 도시와 도시를 넘나들면서 시차가 달라진다. 한국에서는 ‘전국적으로 비’라고 해도 문제가 되지 않지만, 미국에서 ‘전국적으로 비’라고 하면 ‘인류 멸망의 순간’을 떠 올린다. 아는 만큼 보인다. 아직 먼 나라 얘기지만 다음 대통령 후보 토론에서는 ‘이미지’가 아닌 7%의 내용에 귀 기울이면 지금 같은 낭패는 보지 않을 거라 확신하지만, 보고 싶은 것만 보려는, 아는 만큼만 보인다는 격언은 그냥 생긴 것이 아니라는 것이 한탄스러울 뿐이다.
 
지식인이 지식인으로 남을 수 있는 것은, 스스로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안용주

전 선문대학교 국제레저관광학과 교수
전 대전관광공사 상임이사
현 (사)한국지역혁신네트워크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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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의 : 박창규 기자 010-8713-5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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