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가 초등학생이던 시절 자식을 어느 고등학교에 보낼지 일찍부터 고민하며 고등학교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던 엄마들을 여럿 만날 수 있었다. 근처 여고에서는 단 한 문제를 더 맞고 더 틀리느냐에 따라 전교 등수 수십 등의 차이가 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딸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새겨들으란 이야기구나’ 속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수십 등의 차이를 결정하는 그 한 문제는 어떤 문제일까?’ 아니 ‘어떤 문제이어야 하는가?’ ‘학생들이 정말 꼭 알아야 하는 지식인가?’ ‘생활을 그리고 사회를 바꾸는 지식인가?’ 대학에서 예비교사를 가르치고 있는 교육학자인 나에게 떠오른 질문이었다.
지금 딸은 고등학교 2학년이고 그동안 쌓인 경험치가 있어 그 한 문제가 갖는 어마어마한 의미는 상위그룹 학생들에게 해당한다는 것쯤은 알게 되었다. 그리고 요즘 대치동 학원가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TV 드라마 ‘졸업’을 통해 잠자고 있던 질문, ‘어떤 문제이어야 하는가?’ 그 한 문제의 정체에 관한 질문이 다시 활성화되었다.
드라마 속의 이야기이다. 학원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학교를 찾아가 중간고사 시험문제에 이의를 제기하며 재시험을 요구하는 과감한 행보를 단행한다. 평소 나는 학교선생님과 학원선생님의 관계가 ‘톰과 제리’의 관계가 될 수 있고, 그리고 그런 관계가 되면 위험해질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이 관계의 경우 ‘생쥐 제리’는 학교선생님이고, ‘고양이 톰’은 학원선생님이다. 생쥐 제리는 전력을 다해 도망쳐야 하고, 그런 도망치는 제리를 고양이 톰은 끝까지 쫓아야 하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극 중에서 이의 제기와 재시험 요구를 위해 학교선생님을 방문한 학원선생님의 등장은 학교선생님으로 하여금 자신을 쫓고 있는 고양이 톰의 존재를 그리고 동시에 자신을 도망가야 할 생쥐 제리로 인식하게 하는 사건, 즉 톰과 제리의 관계로 만든 사건이었다.
톰과 제리의 관계 속으로 들어 온 학교 국어선생님은 자신을, 정확히는 자신이 출제 할 문제를 쫓고 있는 톰으로부터 도망가기 위해 기말고사 문제를 연계 지문 없이 100% 교과서에서 출제한다. 많은 학생들이 백 점 만점을 받자 이를 당연하게 자신의 높은 적중률로 평가하는 학원과 학원선생님의 승리감, 자부심은 따라서 높아진다.
백점 맞는 학생들이 많으면 잘 가르친 공은 학원선생님들의 독차지가 되고 학생들을 등수로, 등급으로 줄을 세워야 하는 학교에서는 오히려 국어 선생님에 대한 동료 선생님들의 질타와 ‘제발 아무것도 하지 말아 달라’는 당부로 이어지고 결국 국어 선생님은 사직서를 내며 가벼워진 어깨와 두둑해질 통장을 찾아 학원 부원장으로 이직을 결심한다.
아직 드라마의 종반 부분이 남아 있어 어떻게 전개될지 알 수 없지만 사제 간의 로맨스와 배우들의 연기에 대한 호평은 제외하고 교육 현실 묘사에 국한하여 이 드라마에 대한 평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일반 대중의 관심을 받지 못하던 사교육 종사자들을 주인공으로 설정하여 현실적으로 묘사함으로써 사교육계에 대한 이해도를 높였다는 평가가 있다. 이 드라마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일들이(재시험 요구 제외) 여러 학교와 학원에서 실제로 발생하고 있는 것을 목격하고 있는 나로서는 이 평가를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이 드라마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이유는 단지 사교육계에 대한 이해도를 높였기 때문만이 아니다. 이로 인해 함께 학교 선생님들의 고민과 고충에 대한 이해도 또한 높였기 때문이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학교선생님들의 고민과 고충의 본질을 건드리지는 않고 있다는 점이다. 학원선생님은 높은 적중률을 위해 학교선생님이 ‘어떤 문제를 출제 할 것인가?’를 질문한다. 그러나 학교선생님들의 질문은 ‘어떤 문제이어야 하는가?’이다. 사교육계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드라마가 담을 수 없는 이 질문이 바로 학교선생님들의 고민과 고충의 본질인 것이다. 정보 부족으로든, 경제적 이유에서든 혹은 소신 때문이든 적중률 높은 학원선생님의 강의를 듣지 못하는, 들을 수 없는 더 많은 학생들이 있다. 만약 그래서 실패한 학생들이 있을 때 학원선생님은 ‘네 잘못이지’라면 될 일이다. 그러나 학교선생님은 단지 그런 이유로 실패하는 학생들이 있어서는 안 되므로, 즉 경쟁심 때문도, 자존심 때문도 아닌 무엇보다 선생님이기 때문에 ‘어떤 문제이어야 하는가?’를 질문해야 하는 것이다.
전국중등교사노동조합이 학교 재시험 요구 장면 - 학원선생님이 톰으로 등장하는 장면 - 에 대해서 “해당 내용에 대한 과도한 극 중 묘사와 설정은 공교육 일선에서 자라나는 세대를 가르치는 임무를 수행하는 교사들의 사기를 저하시키며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 시청자들에게도 한국 공교육 현장에 대한 왜곡된 시선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유감을 표현하였다. 그리고 “입시에 종속돼 교육과정과 평가가 기형적으로 운영되어 온 중등교육의 존재 이유와 본질,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국가 교육과정의 본질을 살리며 운영해 나가려는 중등 교사들의 노고와 고뇌를 깊이 있게 성찰하지 못한 표현”이라고 비판했다.
드라마에서 학원선생님은 ‘많은 학생들을 좋은 대학에 보내는 것’ 이것이야말로 학원선생님의 목표이자 학교선생님의 목표라며 동일한 목표를 위해 각자 최선을 다하면 된다는 식의 이야기를 한다. 이런 동일화는 학교선생님들의 고민과 고충을 왜곡하는 일로 이어지기 쉽다. 그래서 학원선생님과 학교선생님 사이의 관계를 톰과 제리의 관계로 만들기 쉽다. 왜냐하면 이런 동일화는 학교선생님의 목표에서 교육의 차원을 지워버리기 때문이다. 즉 선생님들의 입장 표현에서처럼 선생님들의 ‘어떤 문제이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교육의 존재 이유와 본질’을 대신하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교육부 고시 제2022-33호 초·중등학교 교육과정 총론 부분에서 고지하고 있는 고등학교 교육 목표는 다음과 같다.
“고등학교 교육은 중학교 교육의 성과를 바탕으로, 학생의 적성과 소질에 맞게 진로를 개척하며 세계와 소통하는 민주시민으로서의 자질을 함양하는 데 중점을 둔다. 1) 성숙한 자아의식과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일의 가치를 이해하고, 자신의 진로에 맞는 지식과 기능을 익히며 평생 학습의 기본 능력을 기른다. 2) 다양한 분야의 지식과 경험을 융합하여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능력을 기른다. 3) 다양한 문화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자신의 삶을 성찰하고 새로운 문화 창출에 기여할 수 있는 자질과 태도를 기른다. 4) 국가 공동체에 대한 책임감을 바탕으로 배려와 나눔을 실천하며 세계와 소통하는 민주시민으로서의 자질과 태도를 기른다.
하일선
현 국립공주대학교 외래교수
현 충남도 정책자문위원
독일 쾰른대학교 교육학박사
최신 HOT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