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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정아 칼럼] 열네 살의 당찬 소녀, 여행을 떠나다

작성일 : 2024.06.05 23:49 수정일 : 2024.06.06 02:05

작성자 : 편집부 (sisa041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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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천을 유람하는 여성은 곤장 100대에 처한다.’

지금 들어도 살벌하게 느껴지는 이 문구는 조선시대 여인들의 여행금지법으로 ‘경국대전’에 나온다. 곤장 100대면 사형이나 마찬가지인데 여행이 뭐라고 그렇게까지 했을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의 허락까지 받아 금강산 여행을 떠난 용감한 소녀가 있었으니 바로 ‘김금원’이다. 그녀의 나이 겨우 열네 살이었다.

잠시나마 인생의 굴레를 벗어던진, 한편으론 명랑한 조선판 배낭여행이랄까. 교통, 여비, 시간까지 나로서도 긴 여행은 쉽지 않은데 김금원은 남장을 한 여인의 몸으로 무려 반년에 걸친 여행을 이어갔다. 어느 날엔 빙어를 사서 회로 먹어도 보고, 또 어느 날엔 아름다운 풍경으로 시를 짓기도 하고, 그러다 정성스러운 밥상을 대접받기도 하며 여행의 즐거움을 만끽했다. 문밖출입조차 쉽지 않았던 조선시대에 너른 세상을 여행하는 꿈을 이뤘으니 얼마나 자유롭고 좋았을까. 훗날 금원은 자신의 여행기 <호동서락기(1851)>에 그날의 소감을 이렇게 남겼다.

‘마치 새장에 갇혀 있던 새가 새장을 나와 끝없는 푸른 하늘을 날아오르고, 좋은 말이 굴레와 안장을 벗은 채 천리를 달리는 기분이로다.’

금원이 둘러본 관동팔경과 금강산은 당시 선비들에게도 인기 있는 여행 코스였다. 그 길목에 위치한 강릉 선교장은 자연스레 고급진 ‘여행자의 집’으로 자리매김했다. 왕족의 후손 ‘이내번’이 지은 선교장은 100여 칸이 넘는 고급 주택으로 ‘대궐 밖 조선 제일 큰 집’으로 불렸다. 창덕궁 부용정을 닮은 활래정, 러시아공사관에서 선물한 차양이 있는 열화당(사랑채) 등 품은 이야기와 관련된 인물까지 하나같이 유서 깊고 아름다운 곳이다.

 

창덕궁 부용지와 닮은 모습의 선교장 활래정 전경 (사진=하정아)

 

선교장의 손님 대하기가 신선 대하듯 후하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공간’만 봐도 손님 ‘환대’에 얼마나 신경 썼는지 알 수 있는데, 열화당과 마주한 23칸의 행랑채가 그렇다. 손님용 밥상만 300개가 넘었고, 머물다 떠나는 사람들에게 일일이 옷을 지어 선물했다고 하니 선교장의 극진한 대접은 가히 짐작되고도 남는다. 덕분에 내로라하는 당대 인사들이 많이 찾아왔고, 그들은 한양 정계를 잇는 중요한 인맥이 되어주었다. 이는 강원도 변방의 선교장이 한양과의 거리를 좁히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극진한 환대에 각지의 다양한 사람들이 문화예술로 즐겁게 교류하니 오래 머무는 이가 적지 않았다. 그럴 때면 말 대신 국그릇과 밥그릇의 위치를 바꾼 상을 내었고, 뜻을 알아챈 선비들은 조용히 떠났다는 재미있는 일화도 있다. 

손님에게 좋은 대접을 할 수 있었던 건 이 집의 ‘경제력’ 때문이었다. 선교장이라는 이름에서도 드러난다. 경포호가 넓었던 옛날에는 배를 타야 집에 도착할 수 있었기 때문에 ‘선교(船橋)’라 불렸다. 거기에 주문진, 양양, 삼척, 울진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양의 농토를 소유했던 최고부잣집이라 ‘장(莊)’을 붙였다. 자급자족하는 경제시스템을 갖췄다는 의미로 조선시대 만석꾼 중에서도 유례가 없을 정도였다 한다.

선교장은 손님 환대와 문화적 소통을 경영철학으로 삼았고, 조선판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도 실천해왔다. 흉년이 들면 식량창고를 열어 백성들에게 베풀었고, 일제강점기에는 강원도 최초의 근대식 동진학교를 만들어 여운형 선생과 함께 교육에 힘썼으며, 독립운동자금이 오가는 통로 역할을 했던 터라 김구 선생도 자주 찾았다. 관련된 많은 유물이 선교장 내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김금원으로 분한 배우가 강릉 선교장을 내려다보고 있는 모습.(사진=국가유산진흥원)
 

올해도 달빛 그윽한 선교장에 김금원을 모티프로 문화적 상상력을 더한 프로그램 ‘관동풍류의 길’이 펼쳐졌다. 드라마가 되는 거문고 가락에 신선이 노닐고 찻잔에 담긴 달빛과 고즈넉한 산책로까지 금원의 발걸음을 따라 떠나본 시간여행이었다. 햇수로 3년, 2,000여 명의 사람들이 다녀갔다. 궁중문화축전, 조선왕릉문화제, 세계유산축전은 물로 인기가 높은 궁궐프로그램들을 만들어온 국가유산청(옛 문화재청)과 국가유산진흥원(옛 한국문화재재단)이 2022년부터 함께 추진해온 ‘국가유산방문캠페인사업’으로 지역에서의 첫 거점프로그램이었다.

역사학자 E. H. 카는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다. 우리가 프로그램을 통해 선물한 것은 밤의 낭만이었지만 그 너머에 있는 김금원의 이야기는 유교적 이데올로기가 만든 억압과 차별에 대한 조선시대의 사회상과 이어진다. 생략된 행간 속 그날, 열네 살의 당찬 소녀가 내디딘 한 걸음이 크게 느껴지는 이유다.

 


 

하정아

㈜엠버스어스 대표
문화체육관광부 문화관광축제 평가위원
문화기획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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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의 : 박창규 기자 010-8713-5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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