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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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용주 一枝一言] 뒷모습

작성일 : 2024.04.04 19:47

작성자 : 편집부 (sisa041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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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선 사람의 뒷태는 정직하다.’ 미셸 투루니에(Michel Tournier)가 사진작가 에두아르 부바(Eduouard Boubat)가 촬영한 ‘뒷모습’의 사진에 설명을 위한 주석에 적은 글이다. 에두아르 부바는 평생을 사람의 뒷모습을 주제로 사진을 찍은 작가로 유명하다.

그의 작품에는 다양한 군상의 뒤태를 담은 사진이 있다. 구부정한 허리에 지팡이를 짚고 힘겹게 한 걸음 한 걸음 발걸음을 옮기는 어느 여성의 뒷모습, 다정하게 허리를 껴안은 채 걸어가고 있는 두 소녀의 뒷모습, 바다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누는듯한 부부인 듯 아닌듯한 남녀의 뒷모습까지 굳이 해석을 달아주지 않아도 보는 사람만의 스토리를 만들어주는 듯한 사진이 담겨있다. ‘뒷모습’이라는 책에서 투루니에는 이렇게 적고 있다.

“남자든 여자든 사람은 자신의 얼굴로 표정을 짓고, 손짓을 하고, 몸짓과 발걸음으로 자신을 표현한다. 모든 것이 다 정면에 나타나 있다. 그렇다면 그 이면은? 뒤쪽은? 등 뒤는? 등은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다.”

내가 누군가의 뒷모습을 본다는 것은 그와 한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는 뜻이다. 어쩌면 떠나는 사람과 기다리는 사람의 모습일 수도 있다. 인공적으로 가공할 수 있는 앞모습과 있는 그대로의 뒷모습은 그렇게 다르다.

 

 

어느덧 4월이다. 음력으로는 아직 2월이다. 음력 2월의 다른 이름은 여월(如月)이다. 겨울잠에 들었던 만물이 깨어나는 시기라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양력 4월의 또 다른 이름은 신록(新綠)의 계절이다. 신록, 얼마나 아름다운 말인가.

꽁꽁 얼어붙은 한 겨울동안 숨소리조차 못 내면서 마치 독일군을 피해 마룻바닥에 혹은 다락방에 꼭꼭 숨어 숨죽이는 이스라엘의 소녀처럼, 그렇게 얼어붙은 대지 밑에서 봄을 기다렸던 몸부림이 드디어 동토(凍土)를 부수고 초록의 얼굴을 내미는 시점이다.

 

 

내리는 비 또한 사위를 얼어 붙일 듯 겨울비와 달리 대지에 봉긋하게 솟아나는 초록들에게 반가운 인사를 하듯이 살며시, 요란스럽지 않게 대지를 적시고 있다. 봄비를 머금은 초록이, 꽃들이 반가운 인사를 한다. 세상이 시끄러워도 나무는 풀은 자기의 역할을 묵묵히 수행해 간다. 마치 묵언수행을 하는 수행자와 같이 도도하게, 침잠(沈潛)할 줄 안다.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말처럼 가진 것 없고 보잘 것 없는 자(者)들이 세상을 향해 소리치는 것은 스스로의 부족함을 감추고자 하는 욕망의 발로다.

 

 

등고자비(登高自卑)라는 말이 있다. 중용(中庸)에 나오는 말로 높은 곳에 오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낮은 곳부터 시작해야 함을 일컫는 말로, 지위가 높아질수록 스스로를 낮추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 속담에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말과 상통한다.

이와 반대되는 말로 방약무인(傍若無人)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사기(史記)의 자객열전(刺客列傳)에서 유래한 말로, ‘마치 곁에 사람이 없는 것처럼 행동한다’는 의미로, ‘주위 사람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제멋대로 마구 행동하는 태도’를 가리킬 때 사용한다.

일주일 후가 제22대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이다. 국민을 돌아보지 않는 정부의 방약무인(傍若無人)한 태도에 응징(膺懲)을 위해 선거일을 기다리는 국민이 많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과연 그럴까? 혹은 정말 그럴까?

 

 

길은 이어진다. 삶이 이어지듯이. 행복한 삶도 불행한 삶도, 가난한 삶도 부유한 삶도, 의미를 찾기 위한 구도의 삶도 홍등가의 환락에 취해 흔들거리는 삶도, 유한(有限)한 여정(旅程)의 끝을 향해 누에가 실을 잣듯이 그렇게 삶을 이어진다.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아니 가장 놓기 싫은 것은 레테의 강을 지나면서 찾아오는 망각(忘却)의 순간이다. 사랑하던 모든 기억들이 레테의 강에 흩뿌려 질 것이 안타깝다. 

어느 식당에서 마주한 ‘당신은 4,160번의 일요일을 만날 수 있다’는 글귀에 가슴이 멍해졌다. 내가 만날 수 있는 일요일은 몇 번 남았을까 계산기를 두드렸다. 이미 너무 많은 일요일을 써 버렸다는 것에 현기증이 왔다.

 

 

함께 근무하던 동료로부터 문자가 왔다. 나보다 1년 앞서 명퇴를 한 동갑내기 동료다. 서로 바쁘게 살다보니 같은 대학에 있으면서도 간간히 전화정도 하던 정도였는데, 문자 내용에 아연실색(啞然失色)하고 말았다.

‘본인부고’라는 문구가 섬뜩했다. 작년 이맘때 명퇴한다는 소식에 같이 점심을 먹었는데, 그게 친구와의 마지막 인사가 된 셈이다. 삶이 유한(有限)하기에 가치가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감정으로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삼가 친구의 명복(冥福)을 빈다.

 


 

안용주

전 선문대학교 국제레저관광학과 교수
전 대전관광공사 상임이사
현 (사)한국지역혁신네트워크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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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의 : 박창규 기자 010-8713-5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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