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입가경(漸入佳境)이라는 말을 구성하고 있는 점(漸)이라는 한자는 “점점, 차차, 차츰 나아가다”는 의미를 갖는 한자다. 들 입(入), 아름다울 가(佳), 장소 경(境)으로 이루어져 있으니 ‘앞으로 나아갈수록 아름다운 경지로 들어간다’는 의미로 ‘어떤 일이나 상황(狀況)이 갈수록 흥미롭게 전개된다’는 뜻으로 사용된다. 그러나 요즘은 ‘시간이 지날수록 하는 언행이 더욱 꼴불견’이라는 부정적 의미로 더 많이 전용(轉用)되는 느낌이다.
점입가경이라는 말은 중국 진(晉)나라 시대 왕희지(王羲之)와 쌍벽을 이룬 고개지(顧愷之)의 이야기를 다룬 고개지전(顧愷之傳)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고개지는 시서화(詩書畵)에 모두 뛰어났는데 현재 영국의 대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여사잠도(女史箴圖)로 유명하다.
제22대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가 이제 열흘 남았다. 선거를 위한 투표용지 인쇄가 시작되었는데 한 지역의 비례대표 투표용지에는 40개의 정당이름이 나열되기도 했다. 문제는 이번 선거는 정책의 타당성이나 실현가능성 등의 유불리에 대한 논의는 아예 실종(失踪)되었다는 점이다. 오직 검찰총장이었던 사람이 대통령이 된 2년간 한국에서 이루어 놓은 성과에 대한 심판(審判)에 초점이 쏠리고 있다. 그러나 그 심판(審判)의 목소리는 현 여당에게 불리하게 작동되고 있는 느낌이다.
불과 수일전에 발표된 스웨덴의 민주주의 다양성연구소에서는 한국을 “문재인 전 정권과 야당 탄압, 언론자유 훼손”등의 사유를 들면서 한국을 147개 국가 가운데 47위(28위→47위)로 발표하며 “민주화에서 독재화(autocratization)로의 전환이 진행되는 국가”로 분류하고, 한국이 독재화가 진행중인 국가로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다고 보고하고 있다. 그러면서 ‘한국은 여전히 자유민주주의 국가지만, 문재인 전 대통령의 노력은 무력화 됐다’면서 한국을 언론의 대정부 비판이 위축된 나라 20개국 중 한 곳으로 지목했다.
이 같은 외신보도는 현 정부가 스스로 자초(自招)한 면이 강하다. 그 첫 막을 올린 것은 “바이든-날리면”에 대한 보도와 그 이후에 이루어진 언론에 대한 일련의 정부 대응이다. 윤대통령의 동남아시아 순방을 앞두고 윤석열대통령실은 MBC 기자들의 대통령 전용기 탑승을 불허(不許)하는 결정을 내렸다. MBC에서는 “대통령실의 전용기 탑승 거부가 언론 자유를 심각히 제약하는 행위로 보고 유감을 표하는 바이다. 특정 언론사의 대통령 전용기 탑승 거부는 군사독재 시대에도 찾아볼 수 없었던 전대미문의 일”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 |
| 영국 만평가 스티브 브라이트(Steve Bright)가 그린 트럼프 폭주열차 |
다음으로는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 개최한 부천국제만화축제(2022)에서 금상을 수상한 “윤석열차”에 대해 문체부가 “정치적인 주제를 노골적으로 다룬 작품”이라며 주최측에 ‘엄중경고’하는 상황에서 발생했다. 문제는 그 이후에 이루어진 일들이다. 문체부는 이후 전국학생만화공모전에 후원명칭 사용을 못하게 했고,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은 국고보조금예산을 절반가량 깎이는 보복성 삭감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고교생의 표현의 자유에 대한 지나친 정부의 대응이라는 비판도 있다.
또 다른 부분은 국민의 입을 강제로 틀어막으려 하는 듯한 윤석열정부의 지나친 대응이 불러온 것으로 보인다. 그 시작은 윤석열 대통령의 전북특별자치도 출범식에서 대통령을 향해 ‘국정기조를 바꿔야 한다’고 외치던 강성희(진보당) 의원을 대통령실 경호원들이 입을 틀어막고 사지를 들어 연행한 사건이다. 이 같은 소위 ‘입틀막 사지연행’ 사건은 이 한번으로 그친 것이 아니고, 카이스트 학위 수여식에서 ‘R&D예산 삭감’에 항의하던 신민기 씨에게도, 윤석렬 대통령이 직접 주재한 의료개혁 민생토론회에서 정부 의료 정책에 반대하는 발언을 하려던 임현택(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장) 씨에게도 같은 일이 연속적으로 벌어진 것이다.
대통령 임기 중에 치러지는 선거는 현 대통령의 중간 심판(審判) 성격이 매우 강하다. 특히, 평생을 검사로서, 검찰총장 시절 박근혜 전대통령을 수사하면서 ‘공정과 상식’을 앞세워 대통령에까지 당선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국민들의 심판이 전제된 선거라는 점에서 여당과 야당 모두 전력으로 부딪치는 모양새다.
이번 제22대 총선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는 조국 전 법무장관의 정치인으로서의 변신(變身)이다. 조국씨는 서울대학교 법대 교수, 문재인 정부 민정수석 비서관, 제66대 법무부장관을 지냈지만, 교수시절부터 주장했던 검찰개혁의 선봉(先鋒)에 섰다가 검찰로부터의 집중 포격을 받아 본인은 물론 부인과 자녀까지 검찰로부터 혹독한 시련을 받을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울산대학교 교수시절부터 진보적인 시각으로 사회참여에 적극적으로 나섰고 이로 인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수감되기도 했다. 그 후로 ‘법(法)학’전문가로서 연구자의 길을 걸었던 그는 검찰과의 지속적인 대립결과 서울대학교로부터 직위해제를 당해 연구자의 길을 강제로 멈추게 된다. 이 지점에서 조국 전 서울대학교 교수는 2024년 2월 13일에 “검찰 독재정치, 민생을 외면하는 무능한 정권을 심판해야 한다”면서 부산민주공원에서 신당창당을 선언했다.
창당 초기에는 미미한 지지율이었던 조국혁신당은 한 달이 조금 지난 현재 총선 비례정당 지지율에서 거대 양당이 만든 위성정당을 모두 제쳤다. 지금 추세(趨勢)대로 간다면 조국혁신당의 원내 진입은 확실시되고 있다.
창당 한 달이 조금 지난 조국혁신당이 제22대 총선의 태풍으로 자리 잡은 것은 어떤 이유일까? 많은 정치평론가들이 다양한 의견들을 나름대로 제시하고 있지만, 아무도 제대로 된 이유를 설명하지는 못하고 있다. 아니 설명하기가 매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무너지지 않는 공고한 지지기반이 있었다. 일명 콘크리트 지지율이다. 그러나 이 지지율은 본인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후광(後光)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이다. 그렇다면 창당 50일 만에 믿을 수 없는 지지세를 등에 업고 조국혁신당이 제22대 총선의 태풍의 핵으로 자리매김한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은 누구일까? ‘더 이상 잃어버릴 것이 없는 사람’이다. ‘건널 다리를 불사른 사람’이다. 한신(韓信)이 말한 배수진(背水陣)이다. 이는 이순신장군의 今臣戰船 尙有十二(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다)의 심정과 다를 바가 없다. 절박함이 그를 정치무대로 떠밀었고,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그에게 마이크를 준 것이다. 그의 절박하고 질박한 울림이 파장을 만들어 냈고, 국민이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는 모두 인간이기를 원한다. 힘 있는 자가 괴롭히면 도와줄 힘은 없어도 가슴으로 분노한다. 권력 있는 자가 몽둥이를 휘두르면 무서워 움츠릴지언정 가슴으로 동조하지는 않는다. 어미는 늘 가장 아픈 손가락을 신경 쓴다. 조국을 바라보는 마음이 그런 심정이 아닐까.

안용주
전 선문대학교 국제레저관광학과 교수
전 대전관광공사 상임이사
현 (사)한국지역혁신네트워크 이사장
현 한국해양관광학회 부회장
최신 HOT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