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서울’로 말은 ‘제주’로 보내라. 단, ‘천안을 거쳐서’
작성일 : 2024.01.08 16:11 수정일 : 2024.01.08 22:59
작성자 : 박창규 기자 (sisa041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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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0년대 천안삼거리 공원의 모습. |
천안은 삼남의 길이 한 곳으로 모여 한양으로 이어지던 교통의 요지이자 쉼터였습니다. 과거를 보러 한양을 향하는 영호남의 선비들은 길이 모이는 천안으로 자연스럽게 몰렸습니다. 천안삼거리 주막에서 지친 몸을 쉬며 한 잔 술로 애환과 사연을 풀어냈습니다. 이러한 사연들은 ‘박현수와 능소’ 이야기로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천안삼거리는 만남과 이별, 재회의 광장이었습니다. 이야기 속 애틋한 감정은 천안흥타령이라는 노래로 불리어지고, 천안삼거리가 가지는 교통의 요지라는 이미지 속에는 사람 냄새가 듬뿍 담겨 있습니다. 이렇듯 천안은 전국에서 오가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 곳이었고, 사람들은 수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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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통 초창기 천안톨게이트 모습. |
천안(天安)이라는 지명은 ‘하늘 아래 가장 편안한 곳’이라는 의미입니다. 편안한 곳이니 사람이 몰리고 물자가 몰렸습니다. 왕래가 활발하니 교통 또한 크게 발달했습니다. 국도 1호선이 천안삼거리를 관통하고 나란히 경부고속도로가 달리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내려온 철도는 천안 도심을 지나며 경부선과 장항선으로 갈라집니다. 서쪽으로 조금만 더 가면 KTX열차가 빠른 속도로 달리는 고속철도선이 깔려있습니다.
이렇게 서울에서 내려온 교통망은 천안에서 흩어지고, 삼남에서 올라온 이들은 천안에서 만납니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천안은 서울과 지방을 이어주는 교통의 요지 역할을 했고, 전국에서 사람과 물건이 모여들었습니다. ‘사람은 서울로, 말은 제주로 보내라’는 말 속에는 아마도 ‘천안을 거쳐서’라는 말이 빠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도 하늘 아래 가장 편안한 곳을 통해 전국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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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안시 동남구 신부동 천안종합터미널 일대 모습. |
반대로 천안이 편안하면 천하가 편안할 것이라는 풀이도 있습니다. 그런 이유에서일까 나라의 큰 위기가 닥쳐올 때 마다 천안에서는 분연히 일어선 인물들이 수 없이 등장했습니다. 아우내장터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친 유관순열사, 충무공 김시민장군, 석오 이동녕선생 등 많은 애국지사가 어지럽고 혼란한 나라를 위해 일어섰습니다. 그러기에 천안은 충절을 낳은 고장, 애국충절의 고장이라는 수식어를 가지고 있습니다.
천안시는 1963년 1월 1일 천안군의 천안읍과 환성면이 통합되어 시로 승격한 이후 성장을 거듭했습니다. 2000년 이후 충청남도 최대 도시를 넘어 중부권 수부도시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통합직후 20만 명이던 인구는 1999년 40만 명, 2004년 50만 명을 돌파했고, 2013년 60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2023년 12월 말 현재 69만80 명으로 집계됐는데, 인구 70만을 앞두고 약간의 정체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이처럼 천안은 하늘 아래 가장 편안한 곳이라는 수식어처럼 수많은 사람이 모이고 거쳐 가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역동적으로 발전하는 도시가 되고 있습니다. 이 도시 속에는 어떤 사람들이 어떤 이야기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을까요? 인사이드충청은 2024년 연중기획 ‘공간과 사람’을 통해 천안사람들의 이야기를 독자여러분께 전달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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