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술(呪術)은 ‘무당(巫堂) 등이 신의 힘이나 신비력으로 길흉을 점치고 재액을 물리치거나 힘을 내려달라고 비는 행위’를 가리킨다. 주술(呪術)의 주(呪)는 제단(示)이 놓인 앞에서 입(口)을 통해 빌고 있는 어진사람(儿)을 뜻하는 祝(기원할 축)자의 제단(示) 대신에, 입(口)+입(口)+사람(儿)을 합성하여 ‘빌다・저주하다・방자하다’는 의미를 갖는다. 여기서 ‘방자하다’는 의미는 “남이 못되거나 재앙을 받도록 귀신에게 빌어 저주하다”라는 뜻이다.
12월 3일 심야(深夜)에 울려 퍼진 계엄령 선포는 5천만 대한민국을 패닉 상태로 몰아넣었다. 계엄(戒嚴)이라는 단어는 세대별로 받아들이는 강도가 모두 다를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가장 심각한 트라우마를 간직한 세대는 80년대에 대학을 다녔던 1차 베이비부머(1954~1963) 세대였을 것이다.
1979년 10월 26일 영구집권을 노렸던 박정희가 부하였던 김재규에 의해 살해되자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에 계엄령이 선포되고, 전두환을 필두로 한 정치군인들에 의해 1980년 5월 17일부터 제주도를 포함한 전국 계엄령으로 확대되었다. 비상계엄령이 선포되자 서울 시내를 무장군인들과 탱크가 활보했고, 시청을 비롯해 심지어 동사무소에도 군인들이 배치됐다. 모든 대학 정문에는 탱크와 M16으로 무장한 군인들이 입구를 지키고 대학생들을 몰아냈고, 곧바로 휴교령이 떨어져서 학내 진입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비상계엄을 통해 전국을 탱크와 무장한 군인들의 세상을 만든 전두환은,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전두환의 비상계엄 해제와 민주화를 외치던 광주시민들에게 공수부대를 비롯한 헬리콥터까지 동원한 무차별 사격과 폭력을 통해 신고된 사망추정자는 2,000여 명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탱크와 총칼을 통해 정권을 잡은 전두환은 거수기 역할을 하는 통일주체국민회의라는 간접선거를 통해 11대, 12대 대통령(1980.9.1.~1988.2.24)으로 10년 가까운 세월을 폭력과 총칼로 국민을 지배했다. 광주시민의 피와 선혈을 뒤집어쓴 전두환 군사정권은 폭력으로 탈취한 정권을 인정하지 않는 미국의 신임을 받고자 ‘사거리 180km, 탄두 무게 453kg 이상의 미사일을 절대 개발하지 않겠다’는 ‘미사일 포기각서(1980)’를 바치고, 레이건 대통령으로부터 신군부를 승인(承認)받았다. 이 미사일 포기각서 때문에 일본이 1970년 최초의 인공위성을 발사했지만, 한국은 40여 년간 우주를 향한 로켓개발을 할 수 없게 됐다. 2021년 문재인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 정상회담을 통해 그동안 전두환이 만든 족쇄를 완전히 폐지 시켰다. 그리고 마침내 한국형 발사체 나로호가 2022년 6월 21일 순수 한국기술로 우주로 향한 탐험을 성공적으로 세계 무대에 데뷔했다.
비상계엄 체제를 체험하지 못한 세대는 실감하기 어렵다. 비상계엄이 실시되면 우리가 자주 가는 대부분 기관에는 총칼을 든 군인이 지역 동사무소는 물론 은행, 시청, 도청, 각 언론사, 대학 등에 때에 따라서는 탱크, 장갑차와 함께 군인들이 24시간 감시한다. 방송과 신문은 당연히 군인들에 의해 검열(檢閱)을 받아 정부에 비판적인 내용은 모두 삭제되고, 정권에 아부하는 뉴스만 내보낼 수 있게 된다. 80년대에 대학을 다닌 세대는 이 시절을 살아남은 세대다.
권력을 가진 자가 비상계엄을 선포하는 것은 대부분 영구집권, 왕권정치를 하겠다는 의지 표현이다. 박정희가 그랬고, 전두환이 그랬다. 전두환과 신군부의 쌍두마차였던 노태우가 전두환의 뒤를 이어받았으니 80년대의 불길 같은 국민의 분노에 부서지지 않았다면 전두환 10년, 노태우 10년의 철권통치로 이어졌을 것은 불 보듯 뻔하다.
문제는 이렇게 무자비하고 피비린내 나는 군사정권 시절을 함께 겪었던 ‘국민의 힘’에 속해 있는 대부분의 의원들이 윤석열의 비상식적인 비상계엄 선포를 옹호하고 있다는 점이다. 비상계엄이 실제로 장기화 됐다면 국회는 해산되고, 의원 배지를 달고 있는 본인들도 실업자가 되었을 것이 자명한 사실임에도 그들은 마치 집단 최면에 걸린 사람들처럼 광화문, 여의도는 물론 전국에서 열리고 있는 윤석열 탄핵집회를 먼 산 불구경하듯이 남의 일처럼 여기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국민들은 오죽하면 ‘내란을 동조하는 내란당?’이라는 구호까지 외치고 있지만, 그들에게서 자성(自省)의 모습은 도무지 찾아보기 어렵다. 이들에게서 엿보이는 것은 오로지 현재의 권력 유지를 위한 치졸한 욕망의 화신(化身)같은 모습이다.
집단이 가진 ‘고유한 문화’에 장시간 노출되다 보면 그 특성을 내면화시키게 된다. 마치 그것이 자연스러운 삶의 일부인 것처럼 자리 잡는다. 집단 무의식의 내면화가 시작되면 설사 비윤리적인 행위들조차도 ‘정당화’시키는 상태가 된다. 일단 집단 무의식이 발현되면 다른 집단에 대한 공감 능력 상실을 초래하고, 타인의 생명도 자신의 생명과 같이 소중한 것이라는 ‘자각(自覺)’ 혹은 ‘인식(認識)’조차 사라지게 된다. 사람은 타인과의 끊임없는 비교를 통해 자신의 정오(正誤)를 판단하면서 자아를 바로잡아가지만 집단 무의식이 만들어낸 집단 최면은 주위 사람이 본인과 유사한 태도를 보이기 때문에 자신의 행동에 대한 잘잘못을 판단할 수 있는 합리적 문제 의식을 가질 수 없게 되고, 결국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는데 이르게 된다. 이는 결국 집단이기주의로 발전하고,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은 배척하고,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똘똘 뭉치는 배타적 존재로 우뚝 서게 된다.
터스키기 매독 인체실험(1932~1972)이 대표적인 사례다. 미국 공중보건국은 매독을 치료하지 않고 내버려두면 어떻게 되는지 알기 위해 앨라배마 메이컨군 터스키기(Tuskegee) 흑인들을 대상으로 생체실험을 벌인다. 실험에 사용된 피험자 600명은 대부분 메이컨군에 거주하는 빈곤한 소작농들이었고, 심지어 1943년에는 매독을 치료할 수 있는 페니실린이 나왔지만 이 약물을 사용하지 않고 실험을 계속한 결과, 7명은 결국 매독으로 사망하고 154명이 합병증으로 사망했다. 그러나 실험에 참가한 의료진은 결코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그 사람들은 어차피 가난해서 치료도 못 받고 죽을 사람들인데 그냥 죽을 바에야 의학발전에 기여하고 죽는게 낫지 않는가?’라며 반문했다고 한다. 1997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빌 클린턴대통령이 공식 사과를 했다.
욕망(慾望)은 성난 파도 같아서 조절하지 않으면 배를 뒤집고 모든 것을 집어 삼킨다. 사마천은 《사기》 <범저 채택열전>에서 “욕심을 부리되 멈출 줄 모르면 바라던 것을 잃게 되고, 가지고 있으되 만족할 줄 모르면 가지고 있던 것도 잃게 된다”고 경고한다. 《법구경》에는 “어리석은 자는 쾌락을 쫒고 그 욕망의 무게로 자신을 침몰시킨다”고 경고하고 있다.
안용주
전 선문대학교 국제레저관광학과 교수
전 대전관광공사 상임이사
현 (사)한국지역혁신네트워크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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