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광주지법이 일제의 강제동원 피해자 유족이, 가와사키중공업(川崎重工業)을 상대로 낸 손배소 1심에서 일부 승소 판결(22일)을 내렸다. 광주지법은 일제강제동원 피해자 고 김상기 씨의 유족이 가와사키중공업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소송에서 유족에게 1,538만원(약 167만엔)을 배상하라고 판결하고, 8명 형제가운데 7명은 소멸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청구를 기각했다. 재판이 끝난 뒤 유족은 “죽은 후에라도 한을 풀어달라는 아버지의 유언을 지킬 수 있어서 다행”이라며 “피해자가 80년 전의 피해 사실을 직접 증명해야 하는 현실에 ‘국가(國家)’에 대해 서운함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이번 소송을 지원한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에 따르면 2019년부터 11개 전범기업을 대상으로 87명의 유족이 15건의 청구소송을 제기했지만 이번 소송을 포함한 4건만 1심판결이 나왔고, 나머지 재판은 일본기업의 무대응(無大應)으로 소송서류 송달이 되지 않아 현재까지 계속 지연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무대응 지연작전인 것이다.
그러는 사이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로 일본의 전범기업 후지코시(不二越)에 16살 어린 소녀로 강제동원 됐던 주금용 할머니는 끝내 일본의 사과를 받지 못한 채 향년 96세로 소천 했다. 2019년 손해배상청구소송을 했지만 일본정부의 비협조로 송장전달이 안된다는 송장전달 지연전략 결과 5년간 재판개시를 기다리다 지쳐 유명을 달리하신 것이다. 대부분의 일제강제동원 피해자가 고령인 점을 십분 활용하고 있는 일본의 교활(狡猾)한 전략임을 어린아이도 짐작할 수 있는 사안이다.
이런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일제강제동원(일본명 徵用工) 피해자 가운데 생존자는 2011년 2만 365명에서 2023년에는 겨우 1,264명, 2024년 현재는 904명이 일본제국의 조선인 강제징용에 대해 증언을 해 줄 수 있는 유일한 단서가 되고 있다. 모두 일본의 송장전달을 회피하는 재판지연전략의 결과다. 대부분 10대에 끌려가서 지금은 90을 넘은 고령자가 대부분이다. 이들에게 가장 아쉬운 것은 ‘시간(時間)’이지만, 현 정부는 ‘미래’라는 허명하에 ‘역사’를 지우는데 앞장서고 있는 꼴이다.
조선인 강제징용으로 돈을 번 상기 두개의 전범(戰犯)회사를 살펴보자. 가와사키중공업은 현재 자본금 1,044억 8,400만 엔(약 1조 원), 연매출 1조 8,492억 8,700만 엔(약 16조 6,000억 원), 종업원 수 3만 9,689명의 잘나가는 글로벌기업이다. 후지코시(不二越)는 1928년에 설립된 자본금 160억 엔(약 1,440억 원), 연매출 2,654억 엔(약 2조 3,800억 원)을 올리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참고로 두 회사 모두 한국에서 KAWASAKI KOREA, FUJICO KOREA라는 이름으로 모터사이클(오토바이), 산업용 로봇 등을 판매하고 있다. 이 외에도 299개의 전범기업이 맹위를 떨치고 있지만, 현 정부에서는 오히려 강제동원피해자에 대한 보상을 전범기업 대신 포스코 등 한국기업의 팔을 비틀어서 ‘셀프배상’을 강요하고 있는 실정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105주년 3・1절 기념식에서 “향후 법원의 공탁 수령 문제, 진행 중인 재판, 이런 것들은 우리나라의 해당 재단의 기금으로 우리 정부가 원칙 있게 밝힌 해법으로 이행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앞으로 강제동원 피해자·유족이 국내 법원에서 일본 가해기업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에서 승소해도 한국 정부가 모두 책임지겠다고 공언한 것이다. 강제동원 피해 소송은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한 3건(14명) 말고도 64건(1,124명)이 진행 중인데, 이는 공식 파악된 강제동원 피해자의 0.76% 수준이라 앞으로 더 많아질 수 있다는 보도다. 일국의 대통령이 잠시 맡겨둔 권한을 남용하여 우리 국민의 혈세와 피와 땀으로 일군 기업의 팔을 비틀어서, 가해자인 일본대신 스스로 ‘셀프 배상’을 하겠다고 공공연하게 약속한 셈이다.
이게 나라냐? 라는 물음이 나오는 까닭이다.
그런 가운데 전범기업 미츠비시중공업(三菱重工業)의 강제동원 피해자인 양금덕 할머니의 아들 박상운(67) 씨, 고 정창희 씨의 아들 정종건(67) 씨, 이춘식 씨의 장녀 이고은(65) 씨는 일본제철본사(동경 치요다구) 앞에서 “일본제철(日本製鉄)과의 기나긴 싸움은 자식 세대까지 계속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2018년 일제강제동원 피해자로 대법원 최종승소를 받아낸 이충식 씨의 장녀 이고은 씨는 “아버지는 25년을 싸워서 대법원에서 승소했다. 이것으로 모두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6년이 지난 지금도 그대로다. 아버지는 올해 103세다. 일본제철은 아버지가 살아있는 동안 과거의 잘못에 대해 사죄하고 배상해야한다. 우리는 절대로 단념하지 않겠다”라고 밝혔다.
강제동원피해자 가족들은 한국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일본기업의 배상금을 대신 갚는 윤석열 정권의 ‘제3자 변제’에 대해서도 한목소리로 비판했다. 특히 용산 대통령관계자가 ‘강제징용문제는 정부 해법 등을 통해 종료된 상황’이라고 발언한 것에 대해 “피해자들이 싸우고 있는데 정부가 ‘종료(終了)’라는 단어를 꺼내다니 귀가 의심스럽다”며 분개했다.
그러는 가운데 일본의 각종 매체에 ‘우키시마마루(浮島丸) 승선자 명부를 일본 정부가 가지고 있었다’는 보도가 언론을 장식했다. ‘우키시마마루’는 태평양전쟁이 끝난 1945년 8월 24일 17시 20분 경 마이츠루항(舞鶴港)에 정박해 있던 일본해군 특설운송함 우키시마마루(승무원 255명을 포함한 약 4,000명 승선 추정)가 당시의 조선(한국)을 향해 출발하려던 때에 폭발을 일으켜 침몰해 약 600여명이 사망한 사건이다. 이 배가 침몰한 것이 중요한 이유는, 배를 탄 승객 대부분이 강제동원 등 다양한 이유로 일본에 생존해 있던 당시 조선인(한국인)이었기 때문이다. 전쟁에 패한 일본해군이 제공한 우키시마마루호를 타고 부산항으로 귀국하기 위해 탑승했다가 알지 못할 폭침(爆沈:폭발하여 가라앉음)을 당한 것이다. 이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유족들은 정부에 승선자 명부를 요구했지만, 일본정부는 지금까지 승선할 때 작성했던 명부가 배와 함께 소실됐다고 발뺌을 해 왔었는데, 그 명부가 사실은 일본 정부의 손에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한국으로 귀향하는 조선인노동자를 태운 일본해군수송함이 원인모를 폭발로 침몰해서 600명 이상이 사망한 사건을 설명할 수 있는 승선자 명부가 일본정부의 손아귀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유족들에게 공개하지 않고 약 40년을 숨겨온 까닭은 무엇인가 물어야 할 것이다. 어쩌면 일본은, 혹은 일본해군은 조선인들의 귀향을 원하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 이들이 보고 들은 일본에 대한 각종 정보의 노출을 두려워한 것은 아닐까?
윤석열 정부는 일본을 매우 매우 사랑하는 듯하다. 때로는 대한국민보다도 더 맹렬하게 일본을 향한 우호의 손짓을 하는 것을 보면 어느 정도 사실인 듯하다. 일제의 강제징용 배상을 보더라도, 일본종군위안부 배상에 대한 것을 보더라도, 일본과 항쟁한 3・1절 기념식에서 구구절절 일본을 향해 내뿜은 ‘셀프보상’이라는 기괴망측한 제안을 보더라도, 오늘 우리 국민은 기댈 나라가 없다.
“이게 나라냐!”는 울부짖음의 시즌2가 시작될 모양이다.

안용주
전 선문대학교 국제레저관광학과 교수
전 대전관광공사 상임이사
현 (사)한국지역혁신네트워크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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