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날보다 일찍 눈을 떴다. 새벽 4시가 갓 지난 시간이라 사위가 고요했다. 지난밤에 자정을 넘은 시간에 잠자리에 들었는데, 배꼽시계가 오늘은 조금 일찍 기상(起床)을 명(命)했다. 샤워를 마치고 여느 때처럼 책상 앞에 서서 붓을 들었다.
회갑(回甲)이 되면서 시작한 서예가 어느덧 만으로 4년째에 접어들고 있다. 몸을 쓰며 땀 흘리는 운동에 끌려서 25년을 배드민턴을 쳤지만, 덕분에 즐거운 기억의 뒤안길에 남 보다 일찍 시작한 무릎관절의 통증, 점프 실수로 인한 디스크 파열 등 몸 여기저기에는 성한 곳이 없을 정도다. 그럼에도 라켓을 들고 체육관으로 향하는 이유는 도파민의 유혹이 가장 크다.
우리 몸에서 생성되는 호르몬 가운데 삶의 질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두 물질이 도파민과 세로토닌이라고 한다. 도파민은 주로 성취감, 보상감, 쾌락의 감정을 느끼게 하여 인체를 흥분시키고 살아갈 의욕과 흥미를 느끼게 한다. 새로운 것을 탐색하거나 성취하는 과정에서 쾌락의 감각과 감정을 지배하게 된다.
도파민과 달리 세로토닌은 마음의 안정을 가져오고, 엔도르핀 생성을 촉진 시켜줌으로써 감정, 수면, 식욕 등의 조절에 관여하여 행복감을 느끼게 하므로 ‘행복 호르몬’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러나 모든 세상사에는 양면성을 동시에 포함한다. 도파민은 주의력, 인내심의 향상을 통해 기쁨과 성취감을 보상으로 주지만 높은 중독성이 있다. 니코틴, 코카인 같은 각성제는 중독 유발의 주요인인 도파민 수치 상층을 촉발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행복 호르몬이라고 불리는 세로토닌도 부족하면 우울증이 걸리기 쉽다고 하지만 또한 과한 경우에는 치명적이라고 알려져 있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말은 자주 듣는다. 이런 말은 일견(一見) 합당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생활에 대입하면 부분적으로만 맞는 말이다. 운동이든 예술이든 또는 공부에서도 10년의 법칙이 존재한다. 다중지능이론(multiple intelligence)를 주장한 하워드 가드너(Howard Gardner)는 창조성의 10년 규칙(Ten-year Rule)을 발표하면서, 이는 천재뿐만 아니라 일반인에도 적용된다고 했다. ‘10년 규칙’이란 가드너가 창조적 인물에 대해 연구하면서 발견한 법칙으로 ‘창조적 인물은 한 분야에서 약 10년 동안 해당분야의 지식과 기법을 완전히 터득한 후, 약 10년의 주기로 혁신적인 작품을 창조한다’고 주장했다. 말콤 글래드웰(Malcolm Gladwell)의 그의 저서 아웃 라이어(Outliers)에서, 세계적 수준의 전문가 혹은 성공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1만 시간의 노력이 필요하다며 1만 시간의 법칙을 인용했다.
1만 시간의 법칙은 신경과학자인 다니엘 레비틴(Daniel Levitin)이 제시한 이론으로, 매일 3시간씩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 투자하는 시간을 모두 더한 시간이다. 그러나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3시간씩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결코 누구나 도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피나는 노력과 끊임없는 도전과 용기, 높은 자존감이 있어야 비로소 도달할 수 있는 목표치인 것이다.
붓을 들기 전에 자주 듣는 유튜브를 찾아서 재생 버튼을 눌렀다. 오늘은 열반에 드신 성철스님의 생전 강의를 들었다. 한 번 들었던 내용이지만 평생 자신을 수양하는데 몰입하는 분의 강론(講論)은 반복해서 들어도 늘 새로운 가르침이 있다.
오늘은 접속(接續)과 접촉(接觸)에 대한 강론을 들려주셨다. 인터넷이 생기고 스마트폰이 빠르게 일반화되면서 사람들은 어느새 접촉(接觸)을 피하고 접속(接續)하는데 몰두하고 있다. 접속은 사람과의 직접적인 만남을 회피하고, 그러다 보면 직접 접촉(接觸)해서 상대의 눈과 표정을 보면서 상대의 기분과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을 게을리 하게 되고, 결국은 사람과의 직접적인 접촉이 불편하게 느껴져 피하게 된다는 결론이다.
2019년에 전세계적으로 번진 팬데믹은 대학 강의를 모두 비(非)접촉(接觸)식의 온라인 강의로 바꾸어 놓았다. 학생들은 더 이상 교실에 모이지 않고, 각자의 집에서 혹은 카페에서 각자의 스마트폰 혹은 노트북, 패드와 같은 통신기기를 통해 강의를 듣고 시험을 친다. 당연히 같이 입학한 친구의 얼굴조차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어쩌다 만나면 처음 보는 낮선 이방인으로 남게 된다.
팬데믹이 끝나고 캠퍼스로 돌아온 학생들에게 더 이상 팬데믹 이전의 따뜻한 우정과 학창시절의 추억은 남아 있지 않다. 사람은 만나서(接觸) 얼굴을 보고 이야기할 때 비로소 그 사람의 진심을 이해할 수 있다. 표정을 보고, 눈빛을 보고, 몸짓과 손짓을 보면서 우리는 더 많이 상대를 이해할 수 있다. 상대를 이해한다는 것은 상대의 마음을 아는 것이다. 결국 사람이 살아가는 삶의 가치는 ‘마음’을 어떻게 가져가는가에 달렸다.
달마대사가 한탄하신 말씀이 귀에 울린다. ‘마음, 마음, 마음이여, 알 수가 없구나. 너그러울 때는 온 세상을 다 받아들이다가도 한 번 옹졸해지면 바늘 하나 꽃을 자리가 없도다. 일찍이 원효대사가 말씀하신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를 오늘도 새긴다.

안용주
전 선문대학교 국제레저관광학과 교수
전 대전관광공사 상임이사
현 (사)한국지역혁신네트워크 이사장
최신 HOT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