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詩)의 대표적 소재 중 하나가 꽃이다. 꽃이 상징함은 ‘아름다운 여인’ 혹은 이야기하고 싶은 가장 핵심적인 속성을 상징한다. 그러나 때로는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는 말처럼 피었다가 금방 지고마는 덧없음, 인생무상을 상징하기도 한다. 김춘수 시인의 ‘꽃’은 또 다른 ‘의미’를 상징한다.
모두가 부모의 몸을 빌어 사람으로 태어나지만 각인의 삶은, 그 삶의 길이와 상관없이 어떤 의미를 찾는 여정이다.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는 어두운 세상을 헤쳐나가는데 교육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 어머니의 ‘의지’에 의미를 두었고, 황실에서의 화려하고 풍족한 생활을 훌훌 벗어던지고 육욕(六慾)의 혼탁한 세상을 향해 내딛은 석가모니(釋迦牟尼)의 발걸음은 ‘깨달음’에 의미를 둔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어떤 의미를 둔 존재이기를 원한다. 너에게 혹은 가족에게, 또는 누군가에게...

집에 아끼는 ‘바키라’라는 초목이 있다. 처음 내게 온 것은 28년 전 대학에 처음 부임해서 맞은 생일날이다. 96학번이었던 여학생이 생일 선물이라며 한 뼘 크기의 작은 화분을 내밀었다. 류민숙이라는 학생이다. 졸업 후에 만난 적이 없어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무척이나 궁금하지만 재회의 기쁨은 누리지 못하고 있다. 여러번 죽을뻔한 고비를 넘기면서 아직도 우리집 베란다에서 이제는 나보다 더 큰 키를 자랑하고 있다. 가늘고 연약한 잎사귀를 사방을 향해 손짓하는 모습이 늘 애절하다.
만남과 헤어짐은 이렇게 기쁨과 아쉬움을 동반한다. 시인 한용운은 그의 시 ‘님의 침묵’에서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한다고 노래했다. 세상의 모든 만남은 이별을 내포(內包)한다.
세상에 처음 왔을 때는 이별을 생각해 보지 않았다. 살다보니 항상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귀한 인연도 원하던 원하지 않던 끊임없이 이별을 통보했다.

인생이라는 호수에 파문을 일으켜준 귀한 인연이 몇 가지 있다. 그 중 하나가 늦은 나이에 공부를 하고 싶다고 대학에 입학한 나이든 제자다. 정현종 시인은 그의 시 ‘방문객’에서 ‘한 사람이 온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일이다’면서 ‘그의 과거, 현재, 미래를 포함한 한 일생’이 오기 때문이라고 했다.
늦은 나이였지만 그녀가 보여준 학구열은 식을 줄 몰랐다. 대학을 조기졸업하고, 공부를 더 하고 싶다며 대학원을 진학해서 석‧박사를 단기간에 마치고 모교에서 강의를 시작했다.
‘시작은 미약하지만 그 끝은 창대하리라’는 성경 구절처럼 그녀의 작은 첫 걸음은 대학에 머무는 내내 큰 파문을 던져주었다.
그녀가 스승의 날이라며 작은 화분을 주었다. 28년이라는 시간을 머둘던 대학을 명예퇴직이라는 이름으로 조금 일찍 나서기로 했다. 수많은 인연(因緣)을 만들어 주었던, 삶의 가장 큰 부분이었던, 아니 삶 그 자체라고 여겼던 교수(敎授)라는 자리에서 스스로 멀어지기로 했다. 대학을 떠나는 날 마지막 이삿짐으로 제자가 스승의 날에 선물로 준 화분을 품에 안고 차에 몸을 실었다.
잘 알려진 사자성어 중에 천재일우(千載一遇)라는 말은 삼국명신서찬(三國名臣序贊)을 지은 원굉(袁宏)이라는 사람이 ‘현명한 군주와 뛰어난 신하의 아름다운 만남은 천년에 한 번쯤 있는 기회(千載一遇, 賢智之嘉會)이니 이 어찌 기쁘지 않은가’라고 한 말에서 유래했다. 이는 누군가 뜻이 맞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이니 좋은 기회로 삼으라는 말이다.

일본인들이 인연(因緣)을 이야기할 때 늘 인용하는 사자성어로 이와는 조금 결이 다른 일기일회(一期一會)라는 말이 있다. 일본어 발음으로는 “이치고 이치에”라고 읽는다. 법정스님의 책 『一期一會』를 보면 이 말은 중국 진(晉)나라 원언백(袁彦伯)의 “萬年에 단 한 번, 千年에 단 한 차례뿐인 귀한 만남(萬歲一期 千載一會)”에서 나온 말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천재일우’와 비슷하게 매우 드문 기회를 의미하지만, 일기일회(一期一會)는 ‘만남 자체가 이번 단 한 번 뿐일 수 있으므로, 다음을 기약하지 말고 지금밖에 없다는 각오로 사람과의 만남을 소중하게 하라’는 의미다.
나에게 주어진 인연의 시간은 지금과는 사뭇 대비되는 나날이 될 것이다. 일기일회의 마음으로 인연의 끈을 이어가야겠다.

안용주
전 선문대학교 국제레저관광학과 교수
전 대전관광공사 상임이사
현 (사)한국지역혁신네트워크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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